정토법문

자연법의自然法爾에 대하여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6-02 09:14 조회512회 댓글0건

본문

자연법의自然法爾에 대하여.

참고) 자연법이의 불교적 해석은 ‘저절로[자연히], 혹은 자연스런 행위를 이른다. 다른 어떤 힘도 빌리지 않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스스로의 법칙에 의해서 본래적으로 그러함을 뜻하는데, 불교에서는 불법 그 자체의 진리를 표현하는 경우에 쓰는 말이다.

<신란스님의 편지에서 발췌>

'자연自然'이라는 것에 대해 '자自' '저절로'라는 의미로, 염불행자의 분별이나 판단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연然'그렇게 있게 하다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있게 하다라는 것은 행자의 분별이나 판단에 의한 것이 아니라, 아미타불의 본원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법이法爾라 합니다. '법이法爾'는 아미타불의 본원 의해 그렇게 존재하게 되는 것을 '법이法爾'라고 하는 것입니다. '법이'는 이러한 아미타불의 본원本願의 작용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염불행자의 분별이나 판단은 전혀 들어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법法의 덕德' 즉 본원의 작용으로 그렇게 존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일부러 분별하거나 판단하는 것은 전혀 없습니다. 따라서 "자력적인 분별이나 능력이 섞여있지 않음을 근본적 법의法義로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연'은 처음부터 그렇게 있게 한다라는 말입니다.

아미타불의 본원은 물론 염불행자의 분별이나 판단이 아니라 나무아미타불을 믿게 하여, 정토로 맞이하기 위한 일을 하시고 있으므로 염불행자가 좋고 나쁨을 분별하지 않는 것을 '자연'이라고 들었습니다.
아미타불의 본원은 모든 중생을 '최고의 부처로 만들자'고 맹세하셨습니다. "최고의 부처'라는 것은 형태를 넘어선 궁극의 깨달음 자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형태를 벗어나 있기 때문에, '자연'이라는 것입니다. 형태가 있음을 보일 때는 궁극의 깨달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형태를 벗어난 궁극의 깨달음을 알리기 위하여 보인 모습이 아미타불이라고 들었습니다. 아미타불이란 '자연'이란 것을 알리기 위한 작용 그 자체 인 것입니다. 이 도리를 알고 난 후에는 '자연'에 대해 이런 저런 분별을 해서는 안됩니다. 언제나 '자연'에 대하여 생각하면서 자력적인 분별이 섞이지 않은 것을 근본적 법의法義로 한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이미 분별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연'은 분별할 수 없는 부처님의 지혜의 작용 그 자체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