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법문

자력과 타력에 대하여 - 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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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량각 작성일17-04-17 12:49 조회40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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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416일 일요법회

 

오늘은 많은 분들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일요법회에 참석하지 않아 지난주 법문을 정리하였습니다.

지난주 법문내용은 자력과 타력에 대한 부분입니다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정토신앙은 아미타불 본원에 의해서만 극락왕생이 가능하다는 것에 대하여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극락왕생은 부처님의 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나 염불을 하는 행위는 나의 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일반적인 것 같습니다. 지난주에도 설명을 하였지만 무엇이 자력과 타력에 관계를 다시 한 번 설명할까 합니다.

 

우리가 자력과 타력을 얘기할 때에는 일반적으로 불교수행자가 성불하기 위한 방법 중에서 자신에 의지하여 지계를 통하여 선정을 얻고 그 고요함 속에서 지혜를 얻어 해탈하는 방법을 자력수행이 하고, 오로지 부처님의 힘에 의해서 성불하는 방법을 타력수행이라고 합니다.

기본적으로 자력과 타력만을 놓고 보면 자력수행으로 성불하시는 분들은 매우 수승하고 존경스러운 분들입니다. 왜냐하면 누구나 할 수 없는 수행을 하시어 성불하시는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불교는 기본적으로 자력수행에 의하여 성불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자력수행에 대하여는 굳이 따로 설명을 하지 않아도 이해하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럼 타력수행이란 무엇입니까?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염불 즉 나무아미타불을 명호를 불러 그 명호 속에 담겨있는 무한한 공덕의 작용으로 구제되어지는 과정을 말합니다.

 

그런데 왜 굳이 여기서 자력과 타력을 나누어 얘기하고 있는지 궁금해 합니다.

자력이든 타력이든 염불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염불만 하면 아미타부처님이 중생을 구제하시는데 무엇이 문제이지? 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극락왕생만이 목적이라면 어느 쪽도 상관이 없습니다.

자력염불에 대해서는 20원 회향개생원廻向皆生願에서 타력염불에 대해서는 제18원에 나와 있듯 양 쪽 모두 왕생은 가능 합니다만, 자력염불을 하는 경우에는 부처님을 완전히 믿지 않은 까닭에 극락왕생을 하더라도 변지에 태어나 500년 동안 삼보를 뵙지 못하여 바로 성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일본의 신란스님은 자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자력은 단지 노력하거나 열심히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의 몸을 의지하여 자신의 생각을 유일한 의지처로 삼아, 자신이 한 일에 대한 결과를 힘으로 어떤 어려움에 부딪쳐도 어떠한 상황에 처할지라도, 또 어떤 유혹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세를 바르게 하여 말을 조심하고 몸과 마음을 견고히 하여 오직 한 길로 정진하여 성불하는 그 날까지 살아가는 삶이다.

다시 정리하면 자신이 한 일에 대한 결과를 의지하여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고 유혹되지 않고 몸과 입과 생각을 조심하며 정진하는 삶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타력에 대해서는 아미타여래의 서원 안에서 선택섭취 받아 제18원의 염불왕생의 본원을 즐겁게 믿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타력이라고 말하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 할 수 있습니다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아미타부처님의 제18원을 믿고 부처님은 절대로 우리를 버리지 않고 구제해 주신다는 확신으로 열심히 염불자로서의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활을 하면서 잊지 않고 염불을 하는 것은 그런 확신 속에서 부처님의 다독임과 걱정의 소리를 들으며 부처님의 원에 순종하여 따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는 염불이 자력염불인지 타력염불인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처음에 염불법문을 만나시는 분들은 왜 염불을 시작해야 하는지 이해해야 하므로 경전이나 선지식들의 가르침을 따라 본인들의 의지로 염불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본인들의 의지만으로는 입에서 부처님의 명호가 쉽사리 나오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자력 즉 본인의 근기가 필요하게 되는데 이 근기 또한 개인별의 인연에 따라 경계가 다르게 나타납니다.

 

어떤 사람은 칭명염불을 쉽게 따라하나 믿음이 깊어지지 않고, 또 어떤 사람은 믿음은 있으나 입에서 명호가 쉽게 나오지 않는 경우입니다. 반대로 어느 분은 쉽게 염불을 통하여 믿음을 얻고, 염불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거나 어려워하지도 않습니다.

만약에 이것이 자신의 노력이나 의지로 가능하다면 자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저는 이것은 서로의 인연이 다름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불설무량수경 동방게전생에 착한 공덕 못 쌓은 이는 이 경전 말씀을 들을 길 없고 청정한 계행을 지킨 이라야 부처님의 바른 법문 받아 들으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경전의 말씀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전생의 공덕이 없으면 이 법문 즉 염불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뜻입니다.

 

따라서 자력염불이란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공덕의 힘을 알고 행하는 염불을 스스로 의지에 의해서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부처님의 본원력을 믿는 염불행자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부처님의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불가사의한 본원력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염불이라고 생각하고 아미타불을 마음을 상속받아 그대로 염하면서 생활하는 것이 타력염불일 것입니다.

우리가 염불을 해야지 생각하거나 왜 염불이 나오지 않지 하고 걱정하는 생각 또한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생각이 아니라 부처님께서 우리를 걱정하시는 본원력의 작용이 아닐까요?

 

부처님과 나는 기본적으로 무아의 관계입니다. 부처님의 마음을 생각하고 부처님의 걱정을 믿고 따르는 관계에서 나의 의지는 한 낫 미혹에 불과합니다.

완전히 모든 것을 부처님께 맡기고 생활하는 타력염불이야 말로 화생으로 태어나는 가장 빠른 길임을 명심하신다면 자신을 내려놓고 오로지 불력에 의지하는 염불행자가 되길 바라며 나무아미타불의 육자명호에는 부처님의 팔만사천의 경전의 말씀이 들어있음을 확신하시고 더욱 염불 정진하시길 기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열반하신 효란큰스님께서는 자력이든 타력이든 다 부처님이 구제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아미타불의 본원을 믿고 염불하는 사람들에게는 자력이든 타력이든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하셨는데 그 이유는 마지막에는 타력염불 즉 본원염불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나무아미타불! 석 성진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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