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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초唯信鈔 - 3(성각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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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1-04 15:01 조회25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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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십념十念에 대한 해석

다음, 본원문本願文에서 말씀하셨다.

내지 십념만이라도 왕생할 수 없다면 부처가 되지 않겠다. 이제 이 십념에 대해 어떤 사람이 의심하고 있다. “법화경에서 설한 일념을 수희함念隨喜이란, 방편도 진실도 아닌 이치를 깊이 통달한 것인데, 지금 말하는 십념은 무슨 이유로 열 번의 명호를 부르는 것이라 하는가?” 이 의심에 대해 설명하겠다. 관무량수경중에 하품하생의 사람의 모습에 대해 설하기 를, “오역과 십악 등의 온갖 착하지 못한 업을 지은 자로서 임종할 때에서야 비로소 선 지식의 권유에 따라 겨우 열 번의 명호를 부르고 정토에 왕생하였다.”고 하였으니, 이는 고요한 관靜觀도 아니고 깊은 생각深念도 아닌 오직 명호를 칭념하는 것이다. 그대가 염念할 수 없다면”이라고 말한 것은 깊이 생각할 수 없다는 뜻을 나타내고, “마땅히 무 량수불을 불러야 한다.”라는 말은, 여기서 권유하신 것이 오직 깊이 부처님의 명호를 부 르라는 것이었다. “십념을 구족하게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고, 부처님의 명호를 부른 까닭 에 염념마다 80억겁의 생사의 죄를 소멸하게 되느니라.”는 말에서 십념이란, 오직 열 번의 칭명을 말하는 것이니, 본원의 글은 이를 기준으로 알 수 있다. 선도화상이 이러한 이치를 깊이 깨달아서 본원의 글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 것이다.

만약 내가 부처가 될 적에, 시방의 중생들이 나의 명호를 적게는 열 번에 이르기까지 불렀음(下至十聲)에도 불구하고 왕생할 수 없다면 성불하지 않겠다. 십성十聲이란 말은 입으로 부른다는 뜻이다.

 

5. 의문에 대한 해답

임종과 평소의 염불

1.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임종염불의 힘에는 그 공덕이 매우 크다. 따라서 십념으로 오역의 죄를 소멸하는 것은 임종염불의 힘이어서 평소의 염불에는 이러한 힘이 있기가 어렵다.”고 한다.

이를 생각건대 임종염불의 공덕이 수승하다 하나 마땅히 그 의미를 알아야 한다. 임명종 시에 온갖 고통이 몸에 모여서 정념을 잃기 쉬운데, 그때의 염불이 어찌하여 수승한 공 덕이 있다고 말하는가? 이러한 각도에서 생각해보면, 중병으로 임종이 다가오고 이 몸이 위태로울 때는 신심이 저절로 쉽게 일어난다. 직접 본 세상 사람들의 습관에는, 이 몸이 편안할 때는 의사와 음양사들을 모두 다 믿지 않다가 병이 깊어지게 되면 어떤 사람이 이 치 료 방법이 병을 낫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라고 말하면 실로 병을 낫게 해주리 라 믿고서 입으로 쓴 맛도 맛보고, 몸에다 고통스런 치료까지 보탠다. 만약 이런 제사를 지 내고 기도를 하면 목숨을 연장할 수 있다.”라고 말하면 보물조차도 아끼지 않고서 있는 힘을 다해 제사도 지내고 기도도 하려한다. 이는 곧 목숨을 아끼는 마음이 깊은 까닭이다. ‘목숨을 연장한다.’는 말을 듣는다는 것은 깊은 믿음이 있다는 뜻이다. 임종의 염불도 이를 기준으로 알 수 있다. 목숨이 촉박하여 일찰나 사이에 있으며 오래 머물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면, 후생의 고통이 홀연히 나타나 혹 화차(火車)가 나타난다든지 혹 귀졸들이 눈을 가린다든지 할 때 에 어떡하면 이러한 고통을 면할 수 있고 이러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를 생각하게 된다. 선지식의 가르침을 의지해야 한다.

십념왕생을 듣고서 깊고 두터운 신심이 홀연히 나타난다는 것은, 이를 의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는 곧 고통을 싫어하는 마음이 깊고 즐거움을 원하는 마음이 간절한 까닭에 극락왕생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서 신심이 홀연히 나타난 것이다. 마치 수명을 연장 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서 의사와 음양사를 믿는 것과 같다. 만약에 이러한 마음이 있 다면, 설사 최후의 찰나까지 이르지 않더라도 신심이 결정된 자가 한번 칭념하는 공덕은 모두 임종의 염불과 동등하게 될 것이다.

 

아미타불의 원력과 숙세의 죄업

2. 세상 사람들은 또 이렇게 말한다. “비록 아미타불의 원력에 기대고자 생각하지만 숙세의 죄업을 알 수 없으니 어떻게 쉽게 왕생할 수 있겠는가? 업장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 데, 순후업順後業)이라는 말은 비록 아직은 이 업을 받고 환생하지 않았지만 후후생에는 반드시 그 과보를 불러오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금생에 비록 인간으로 태어났으나 이 몸이 갖고 있는 업을 알 수 없기에, 만약 그 업력이 강하여 악취에 떨어지게 된다면 정토의 왕생은 어려울 것이다!”

이 뜻은 실로 그러하나 의심을 끊기 어렵기에 스스로 망령된 견해를 내는 것이다. 무릇 업도業道란 저울과 같아서 무거운 쪽이 먼저 끌려가기 마련이다. 만약 내 몸에 갖춰진 악취惡趣의 업력이 강했다면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고 먼저 악도에 떨어져야 할 것이다. 이미 인간으로 태어났음을 안 이상, 비록 이 몸에 악취의 업을 갖췄다할지라도 그 업력 은 인간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 오계보다 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업력이 오계조차도 장애하지 않거늘, 하물며 십념의 공덕을 장애할 수 있겠는가? 오계는 유루의 업이요, 십념은 무루의 공덕이다. 오계에는 부처님 원력의 구제가 없지만 염불은 아미타 불의 본원이 인도하는 것이다. 염불의 공덕은 십선보다도 더 수승하고 또 삼계의 모든 선근보다 수승하거늘, 하물며 오계라는 적은 선이겠는가? 오계를 장애할만한 악업조차 없다면 왕생의 장애는 더욱 없을 것이다.

 

염불과 숙세의 선근

3.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오역을 저지른 죄인이 십념에 의지하여 왕생한 것은 숙 세의 선근 때문이다. 우리들의 숙세의 선근을 알기 어려운데, 어떻게 왕생할 수 있겠는 가?”

이것 역시 어리석음에 미혹되어 공연히 이러한 의심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렇 다. 숙세의 선근이 두터운 사람은 금생에도 역시 선근을 닦고 악업을 두려워하지만, 숙세 의 선근이 적은 사람은 금생에 악업을 좋아하고 선근을 지으려하지 않는다. 숙업의 선악은 금 생의 상태로써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나 (오역과 십악의 죄를 지는 자들은 일생동안) 착한 마음이 없었기에 생각해보면 숙세의 선근이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죄업이 비록 무 겁기는 하나 오역까지는 짓지 않았고, 선근이 비록 적다하나 본원을 깊이 믿고 있다. 그렇다 면 오역을 지은 자의 십념조차도 숙세의 선근에 의지하거늘, 하물며 평생을 칭념하고도 도리 어 숙세의 선근에 의지하지 않는단 말인가? 무슨 이유로 오역을 지은자의 십념은 숙세의 선 근이 깊어서라고 말하면서 우리들의 일생동안의 칭념은 숙세의 선근이 적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이른바 작은 지혜가 보리를 장애한다.’는 것이 진실로 이런 부류를 두고 하는 말이 다!

 

염불과 일념의 신심

4. 염불을 믿는다는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 “정토왕생의 길은 신심이 우선이어서 신심이 결 정된 자는 반드시 칭념을 긴요하게 여길 필요가 없다. 대경에서 이미 내지 일념이라 고 설했기 때문에 일념만으로 충분하여 염불의 횟수를 누적하는 것은 오히려 부처님의 원력을 불신하는 것이다. 불신하는 사람은 크게 조롱하고 심하게 꾸짖어야 한다.”

우선, 전수염불을 한다면서 여러 가지 대승의 수행을 버렸고, 그다음 일념을 뜻을 세우고 서 스스로 염불의 행을 중단하였다. 참말로 마계(魔界)에서 기회를 얻어 말세중생을 속이 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설에는 모두 과실이 있다. ‘왕생의 업은 일념으로 충분하다.’는 말은, 이치상으 로는 진실로 그러하다. ‘염불의 횟수를 누적하는 것은 불신하는 자들이다.’고 말하는 것은, 그 말이 상당히 지나치다. ‘일념은 적다.’고 말하면서 염불의 횟수를 쌓지 않으면 왕생하 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은 실로 불신이라 말할 수 있다. ‘왕생의 업은 일념으로도 충분 하다. 그러나 하루를 헛되이 보내기보다 차라리 그 공을 더 쌓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는 가?’ 이렇게 생각하며 칭념하는 자는 비록 종일 칭념하고 밤새 칭념하더라도 공덕은 더욱 더해지고 업인이 결정됨은 더욱 드러나게 된다. 선도화상이 말씀하시길, “힘을 다해 항상 칭념하라.”고 하셨으니, 이를 불신하는 사람이라 말하지 않는다. 오직 조롱만하는 자들은 실로 그래서는 안 된다. ‘일념이란 말이 경문에 나와 있는 이상, 이를 믿지 않는다는 것은 부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일념으로도 결정된다.’는 말을 믿으면서도 마 땅히 일생동안 염불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 비로소 바른 뜻이라 하겠다.

 

6. 맺음말

염불의 요의가 비록 많으나 간략이 이정도로 설명한다. 이 글을 본 사람들은 틀림없이 나를 비웃을 것이다. 비록 그러하나 믿음과 비방이 함께 원인이 되어 모두 정토에 왕생할 것이 다. 금생에 꿈속의 약속을 기록하고 또 내생에서 전생을 증명하는 인연을 맺기 위함일 뿐이 다. 내 뒤의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의 인도를 받을 것이고, 내 앞의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들 을 인도할 것이다. 세세생생 좋은 친구가 되어 서로 불도를 닦으며, 세세생생 지식이 되어 함께 미혹의 집착을 끊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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