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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초唯信鈔 - 2(성각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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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1-04 14:57 조회47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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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염불왕생의 세 가지 마음

총괄하여 밝힘

다음, 염불하는 사람은 응당 삼심을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단지 명호만을 부르는데, 그 누가 일념십념의 공을 갖추지 못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생하는 이가 극히 드문 것 은 삼심을 갖추지 못한 까닭이다. 관무량수경에서 설하기를, “삼심을 갖춘 자는 필히 저 나라에 왕생한다.”고 하셨고, 이를 선도화상이 해석하기를, “이 삼심을 갖춘 이는 필히 저 나라에 왕생한다. 그러나 만약 한 마음이라도 빠지면 왕생할 수 없다.”고 하셨으니, 삼심 가운데 한 마음이라도 빠지면 왕생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상 사람들 중에 아미 타불의 명호를 부르는 사람은 비록 많으나 왕생할 수 없었던 것은 이 삼심을 갖추지 못 했기 때문이니, 마땅히 알라!

 

지성심(至誠心)

삼삼이란, 첫째 지성심인데, 이는 진실한 마음이다. 무릇 불도에 들어온 사람이라면 응당 먼저 진실한 마음을 내야 한다. 마음이 진실하지 않는 자가 불도로 나아가기 어려운 것은, 아미타불께서 옛적에 보살행을 세워서 정토를 건설하며 오로지 진실한 마음을 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 나라에 왕생하고자 하는 이라면 역시 진실한 마음을 내야 할 것이다. 실한 마음이라면 응당 진실하지 않은 마음을 버리고 진실한 마음을 드러내야 할 것이다.

만약 정토를 염원하는 깊은 마음이 없으면서 사람을 만나서 깊이 염원하는 이유를 말하고, 마음속으로 금생의 명예와 이익을 깊이 집착하면서 겉모습은 세상을 싫어하는 태도를 보이고, 겉으로는 착한 마음이 있는 존귀한 모습을 하면서 마음속에 착하지 않고 방일한 마음이 있다면, 이를 허망하고 거짓된 마음이요, 진실한 마음과 어긋난 모습이라 말한다. 러한 마음을 뒤집으면 진실한 마음이 되는 것이니, 마땅히 알라. 이 뜻을 잘못 이해하는 사람이 만사를 제멋대로 할 수 없어서 거짓이 되는 것이며, 자신이 응당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해야 할 일들도 타인에게 보여 알게 함으로써 도리어 방일하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허물을 초래하게 된다.

지금 말하는 진실한 마음, 정토를 구하고 예토를 싫어하며 부처님의 원력을 믿는데 마땅히 진실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 반드시 부끄러움을 드러내고 허물을 보여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때와 인연에 따라서 깊이 숙고해야 한다. 선도화상이 해석하길, “겉으로는 현명 하고 착하고 정진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안으로 거짓을 품어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심심深心

둘째 심심이란 곧 신심을 말하는 것이니, 응당 먼저 신심의 모습을 알아야 할 것이다.

신심이란, 사람 말을 깊이 믿어서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예컨대 마음이 단정하고 아주 믿음직한 사람이 나에게 본인이 직접 본을 일을 가르치면서 말하기를, “그 곳에 산이 있 고, 그 곳에 강이 있다.”고 했을 때 이일을 깊이 믿는다면, 그 말을 믿고 나서 다시 어떤 사람이 그 말은 거짓이다. 산도 없고 강도 없다.”라고 말하더라도 나는 흔들리지 않을 것 이니,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 말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 뒤로 설사 백천명이 말 하더라도 역시 듣지 않고 처음 들었던 일을 깊이 믿는데, 이것을 일러 신심이라 말한다. 지금 석가의 말씀을 믿고 미타의 서원을 믿는데 두 마음이 없어야 하는 것도 역시 이와 같다. 이 신심과 관련해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나는 죄악생사범부로서 광겁 이래 항상 침 몰하고 유전하여 벗어날 인연이 없다.’는 것을 믿는 것이고, 또 하나는 아미타불께서 48원으로 중생들을 섭수하시니, 의심과 걱정 없이 부처님의 원력에 힘입어 반드시 왕생한다.’는 것을 결정코 깊이 믿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늘 말한다. ‘부처님의 원력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 그러나 내 자신을 생각해보면, 죄업의 장애가 많이 쌓여있고 착한 마음이 적게 일어나며, 마음은 항상 산란하여 일심을 얻기 어렵다. 이 몸은 또 늘 게을러서 정진할 수도 없다. 부처님의 원력이 비록 깊다하나 이런 몸을 어떻게 내영한단 말인가?’ 이런 생각들은 현명하여 교만한 마음과 잘난체하는 마음이 없는 것 같지만, 아미타불의 부사의한 원력을 의심하는 죄의 허물이 있다. 아미타불에게 겨우 어느 정도 힘이 있는지를 알아서 죄업의 몸을 구제하기 어렵다고 생 각하는가? 비록 오역죄를 지은 죄인이지만 여전히 십념의 공에 기대어 찰나 간에 왕생할 수 있거늘, 하물며 죄업이 오역까지 이르지 않았고 공이 이미 십념을 넘은 사람이겠는가? 죄가 깊 을 수록 더욱 극락을 염원하며 파계한 죄업의 뿌리가 깊음을 가리지 않는다.’고 말해야 하고, 선이 적을수록 아미타불을 부르며 세 번 다섯 번만 염불해도 부처님이 내영하신다.’고 말해야 한다. 공연히 자신을 비하하고 겁내고 약한 마음을 내어서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지혜를 의심해 서는 안 된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높은 언덕 밑에서 언덕을 오를 수 없을 때, 힘센 사람이 높 은 언덕위에서 밧줄을 드리우며 말한다. “내가 당신을 언덕위로 끌어올리겠다.” 만약 이끌어 주는 사람의 힘을 의심하고 밧줄이 약할 것을 겁내어 손을 거두고 잡지 않는다면 언덕 위는 더욱 오를 수 없을 것이다. 오직 그 말을 따라서 손을 내밀어 밧줄을 잡아야만 언덕에 오를 수 있다. 불력을 의심하여 원력에 기대지 않는 사람은 마치 손을 거두고 밧줄을 잡지 않는 것과 같아서 깨달음의 언덕에 오르기란 어렵다. 오직 믿음의 손을 내밀어 서원의 밧줄을 잡아야 할 것이니, 부처님의 힘이 무궁하여 죄업의 장애가 매우 무거운 이 몸도 무겁지 아니하고, 부처 님의 지혜가 끝이 없어 산란하고 방일한 사람도 버리지 않으신다. 신심만을 요체로 삼고 그 외에는 돌아보지 않는다. 신심이 결정된 자는 삼심이 저절로 구족하고, 본원을 믿고 받 아들임이 진실한 자는 허망하고 거짓된 마음이 없으며, 정토를 기대함에 의심이 없는 자는 반 드시 회향하는 마음이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삼심은 서로 다른 것 같아도 모두 신심 가운데 구족되어 있다.

 

회향발원심迴向發願心

셋째 회향발원심이란, 글귀 중에서 그 의미를 알 수 있으니 자세한 설명이 필요는 없다. 과거·현재의 삼업으로 닦은 선근을 회향하여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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