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관련

유신초唯信鈔 - 1(성각상인)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1-04 14:54 조회482회 댓글0건

본문

1. 성정이문聖淨二門

총괄하여 밝힘

무릇 생사로부터 벗어나서 불도를 이루기를 바라는 자에게는 두 가지 길이 있으니, 첫째는 성도문이요, 둘째는 정토문이다.

성도문

성도문이란, 이 사바세계에서 수행하여 공덕을 쌓으며 금생에 깨달음을 증득하기 위해 힘쓰는 것이다. 이를테면, 진언(밀교)을 행하는 무리들은 이 몸으로 대각(부처)의 지위에 오르기를 생각 하고, 법화(천태)를 부지런히 하는 부류들은 금생에 육근의 증득을 바란다. 비록 교법의 본의는 알겠지만 말법의 오탁악세에서 현생에 증득을 한 자는 억억명 가운데 한 사람도 얻기 어렵다. 그리하여 금생에 이 문(성도문)을 닦는 사람은 이 몸으로 (불과를) 증득함에 있어서 스스로 퇴굴 심을 내게 되는데, 혹자는 멀리 미륵불의 하생을 기약하며 567천만년의 새벽녘의 허공을 바 라보기도 하고, 혹자는 다음 부처님의 출세를 기다리며 다생광겁(多生曠劫) 동안 생사윤회의 밤 하늘의 구름에 미혹되기도 한다. 혹은 겨우 영산과 보타낙가의 영지(靈地)을 원하기도 하고, 혹 은 다시 천상과 인간세상의 작은 과보를 바라기도 한다인연을 맺은 것은 비록 귀하나 빨리 증득하기란 이미 물 건너간 것 같다. 또한 원하는 것은 여전히 삼계내의 일이요, 바라는 것 역시 윤회의 과보이다. 어찌하여 이러한 행업과 혜(慧解)를 회향하여 이처럼 작은 과보를 바란단 말인가? 실로 대성(석가모니불)께서 떠나신지 오래되었고 이치는 깊고 증득한 자는 드물기 때문이다.

 

정토문

1) 근기와 교법의 상응과 두 가지 왕생

정토문이란, 금생의 행업을 회향하여 다음 생의 정토왕생을 발원하며, 정토에서 보살행을 갖추어 성불을 하려는 것이다. 이 문은 말법시대의 근기에 부합하니, 실로 절묘한 방편이다. 그러나 이 문을 다시 두 가지로 나누니, 첫째는 제행왕생이요, 둘째는 염불왕생이다.

2) 제행왕생

제행왕생이란, 부모에게 효순하거나, 스승과 어른을 받들어 모시거나, 58계를 지키거나 보시와 인욕, 내지 삼밀(신구의)일승의 행을 회향하여 정토왕생을 발원하는 것이다. 러한 행들은 왕생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행은 전부 정토의 행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스로 힘써 실천하여 왕생을 발원하는 것이므로 자력왕생이라 부른다. 약 행업을 소홀히 한다면 왕생하기가 어려우니, 저 아미타불의 본원이 아니어서 섭취하는

광명이 비추지 않기 때문이다.

3) 염불왕생

염불왕생이란,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며 왕생을 발원하는 것이다. 이는 저 부처님의 본원에 순응하기 때문에 정정업이라 부르고, 오로지 아미타불의 원력에 이끌려 가는 것이므로 타력왕생이라 부른다.

무릇 명호를 부르는데, 만약 무슨 이유로 저 부처님의 본원에 계합하는 것이라 말하는?’라고 묻는다면, 이는 아미타여래께서 성불하시기 전인 법장비구와 그 때에 세자재왕불이라는 부처님이 계셨기 때문이다. 법장비구가 발보리심을 하고 나서 청정한 국토를 아시고 중생을 이익 되게 하려는 생각으로 부처님을 찾아가 아뢰었다. “저는 이미 보리심을 내었습니다. 이제 청정한 불국토를 건립하고자 하니, 부처님께서 저를 위해 불국토를 장엄하는 무량한 묘행을 자세히 가르쳐 주십시오.” 그때 세자제왕불께서는 법장비구를 위해 210억에 달하는 청정한 불국토의 천인天人 선악과 국토의 추묘麤妙에 대해 자세히 설하시고, 그의 소원대로 모두 나타내 보여주셨다. 이를 보고 난 법장비구는 불국토의 단점을 버리고 장점만 취했으며, 조잡한 것은 버리고 미묘한 것만 원하였다. 예컨대 삼악도가 있는 국토는 가려내어 취하지 않았고, 삼악도가 없는 세계는 원하며 취한 것이다. 다른 원들은 이를 기준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210억에 달하는 제불국토 가운데 수승한 것만 선택하여 극락세계를 건립한 것이다. 이를 선택한 것은 단지 일생동안의 사유가 아닌 5겁 동안의 사유를 거친 것이다. 이처럼 미묘하고 장엄한 국토를 건립하기를 발원하고는, 국토를 건설한 것은 중생을 인도하기 위함인데, 국토가 비록 미묘하나 만약 중생들이 왕생하기 어렵다면 대비대원의 취지를 어긴 것이다. 따라서 극락왕생의 별도의 원인을 결정하는데 일체의 행은 모두 쉽지가 않다. 만약 부모에게 효양하는 것을 취한다면 불효한 사람은 왕생하기 어려울 것이고, 대승경전을 독송하는 것을 취한다면 문구를 모르는 사람은 가망이 없을 것이며, 보시와 지계를 원인으로 결정한다면 간탐과 파계의 무리들은 누락될 것이다. 또 인욕과 정진을 업으로 삼는다면 성내고 게으른 부류들은 버림받게

될 것이다. 다른 행들도 역시 이와 같다. 그리하여 일체 선악범부들이 평등하게 왕생하고 다함께 발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오직 아미타 세 글자 명호를 부르는 것을 왕생의 별인別因으로 삼아야 겠다.’라며 거듭 사유한 것이다. 5겁 동안 이를 심사숙고하고 나서 먼저 제17원에서 제불칭찬원의 원을 세운 것이니, 이 원을 마땅히 잘 이해해야 한다. 호로써 중생들을 남김없이 인도하고자 칭찬명호를 맹세한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의 뜻은 명예를 위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제불의 칭찬이 왜 중요한 것인가? 말씀하시길, 여래의 존호가 매우 분명하여 시방세계에 두루 유행하니, 칭명만 하면 모두 왕생하여 관음세지가 저절로 내영한다네. 바로 이러한 뜻 이니라!

다음, 18원에서 염불왕생의 원을 세우면서 십념을 한 사람을 인도한다.’고 하셨으니, 진실한 말씀이도다!

자세히 생각해보면 이 원이 가장 크고 깊다. 명호가 겨우 여섯 자밖에 안 되지만, 비록 주리반타가와 같은 무리도 쉽게 지닐 수 있어서, 이를 부르는데 행주좌와를 가리지 않고, 이를 행하는데 시간과 장소 등 모든 인연을 꺼리지 않으며, 재가와 출가, 남자와 여자, 은이와 젊은이, 착하거나 악한 사람을 따로 구분하지 않으니, 어떤 사람인들 여기서 빠지겠는가!

저 부처님 인중에서 세우신 크신 서원 이름 듣고 나를 부르면 모두 마중 나온다네.

빈부귀천을 가리지 아니하고 어리석음과 지혜를 가리지 않으며,

많이 듣고 청정한 계율 지키는 자 가리지 아니하고 파계하여 죄 깊은 이 가리지 않으시니,

다만 마음 돌려 염불 많이 하면 깨어진 기와 조각도 금덩이로 변한다네.     - 오회법사찬 -

바로 이 뜻 이니라! 이를 염불왕생이라 부르는 것이다.

 

4) 두 가지 왕생의 비교

용수보살의 십주비바사론』 「이행품에서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불도를 실천하는 데는 난행도가 있고, 이행도가 있다난행도는 육로를 걸어서 가는 것과 같고, 이행도는 바다에서 순풍을 얻는 것과 같다난행도는 오탁악세에서 불퇴의 지위에 오르는 것이고, 이행도는 오직 부처님을 믿는 인연으로 정토왕생을 하는 것이다.

난행도는 성도문이고, 이행도는 정토문이다. 개인적인 생각에는, 정토문에 들어와서 제행을 닦아 왕생하려는 사람은 마치 바다에서 배를 타고 순풍을 만나지 못해 힘써 노를 저으며 조류를 거슬러 올라가며 파도 속을 건너는

것과 같다.

 

2. 전수專修와 잡수雜修

총괄하여 밝힘

다음, 이 염불왕생의 문도 전수와 잡수 두 행으로 나뉜다.

전수專修

전수란, 극락왕생의 발원을 하고 본원에 귀순하는 믿음을 일으키고 난 뒤, 오직 염불일행만 하면서 다른 수행은 조금도 섞지 않는 것이다. 다른 경전과 진언을 읽지 않고, 다른 불보살들의 명호를 부르지 않으며, 오직 아미타불의 명호만을 부르고 오로지 아미타불 한 부처님만 생각하는 것을 전수라 부른다.

잡수 雜修

잡수란, 비록 염불을 위주로 하지만 또 다른 수행을 하거나 다른 선()을 함께 겸하는 것이다.

2의 득실

이 두 가지 가운데 전수가 수승하다. 그 이유는 이미 오로지 극락만을 염원하는 이상, 나라의 교주를 염하는 외에 어찌하여 다른 일들을 섞는단 말인가! 번갯불과 같고 아침이슬과도 같은 목숨과 파초나 물거품과도 같은 이 몸을 겨우 일생의 근수勤修로써 바로 오취五趣의 고향을 떠나게 되는데, 어찌하여 한가하게 제행을 겸한단 말인가! 제불보살과 인연을 맺는 것은 잠시 뜻대로 (제불보살님들을) 공양하는 아침을 기대하고, 대소승 경전의 뜻을 이해하는 것은 당분간 백법명문을 깨닫는 저녁을 기대해야 한다. 한 국토만 원하고 한 부처님만 부르는 것 외에는 다른 일에 신경 써서는 안 된다. 비록 염불의 문으로 들어왔으나 여전히 다른 수행을 겸하는 사람은, 그 뜻을 살펴보면 각자의 본업에 집착하여 버리기 어려운 까닭이다. , 일승을 지니거나 삼밀을 행하는 사람들은 각각 그 행을 회향하면서 극락왕생의 뜻을 바꾸지 않고 아울러 염불을 함께 하고 있는데, 이런 수행에 아무런 허물이 없다고 생각한다. 곧바로 부지런히 본원에 순응하는 이행의 염불을 하지 않고서 오히려 본원을 제쳐두고 제행을 겸하는 것은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래서 선도화상이 말씀하시길, ‘전수를 버리고 잡행을 닦는 사람은 천명 가운데 한명도 왕생할 수 없으나, 만약 전수를 한다면 백이면 백명이 왕생하고 천이면 천명이 왕생한다.’고 하셨고, 또 말씀하시길, 무위열반계인 극락을 인연을 따르는 잡다한 선으로는 왕생하기 어려우니, 여래께서 요법을 선택하시어 아미타불을 전념하고 또 전념하라 가르치네.‘ 라고 하신 것이다.

인연을 따르는 잡다한 선을 싫어한다는 것은, 본업에 대한 집착을 말하는 것이다. 예컨대 궁에서 일하는 사람이 주군을 가까이 하며 몸을 맡긴다면 응당 한결같이 충절(忠節)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주군을 가까이 하면서도 아울러 또 소원한 사람에게 마음을 두고 있다면, 이 사람이 주군을 만나서 칭찬을 받으려 하는 것은, 직접 섬기는 것과 수승함과 열등함이 분명하고 두 마음과 한 마음은 하늘과 땅처럼 크게 다를 것이다.

여기에 대해 어떤 사람은 의심하여 말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염불의 행을 세우고서 매일 만 번씩만 칭념하고는, 그 외에는 온종일 놀기만 하고 밤새도록 잠만 잔다. 또 어떤 사람은 똑같이 만 번을 염불하고 나서 그 뒤로 경전을 독송하고 다른 부처님의 명호를 부른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더 수승한가? 법화경에 곧장 안락(극락)으로 왕생한다는 글이 있는데, 이를 독송하는 사람은 노는 사람과 다르지 않겠는가! 약사경에는 여덟 분의 보살들이 극락으로 인도한다고 하셨는데, 약사불을 부르는 사람이 어찌 잠만 자는 사람과 같단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사람은 전수라고 찬탄하고 이 사람은 잡수라고 싫어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이유인가

지금 이를 생각건대 여전히 전수가 수승하다고 하겠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본래 오탁 악세의 범부들이어서 닥치는 일마다 장애가 많기 마련이다. 아미타불께서는 바로 이를 아 시고 이행의 길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온종일 논다는 것은 산란한 마음이 많은 사람이라 는 것이고, 밤새 잠만 잔다는 것은 잠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는 모두 번뇌가 많은 까닭이어서 끊기가 어렵고 조복(調伏)하기도 어렵다. 만약 놀음을 그친다면 마땅히 염불해 야 하고, 잠에서 깨어났다면 마땅히 본원을 생각하며 전수의 행을 어기지 말아야 할 것이 다. 만 번 염불하고 나서 그 뒤로 다른 경전과 다른 부처님을 독송하고 부른다는 것은 듣 기에는 교묘한 것 같지만, 염불하는 사람에게 누가 만 번으로 제한했단 말인가? 만약 정 진하는 근기라면 온종일 칭명을 할 것이니, 염주를 들고 있는 사람은 응당 아미타불의 명 호를 불러야 하고, 본존을 향해 있는 사람은 응당 아미타불의 형상을 우러러 봐야 할 것 이다. 그리고는 응당 아미타불의 내영을 기다려야 할 텐데 무슨 이유로 여덟 보살이 길을 보여주시길 기다린단 말인가? 마땅히 오로지 본원의 인도에만 기댈 뿐, 번거롭게 일승의 기능을 빌릴 필요는 없다. 행자의 근성에 상중하가 있어서 상근기는 온종일 아미타불을 칭 명하기 바쁜데 무슨 여유가 있어서 다른 부처님을 부른단 말인가! 마땅히 깊이 생각하여 경솔한 마음으로 의심하지 말지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